2차/헨리스틱민

[CG 헨리엘리] Red Headed Outlaw

소금간장_ 2021. 10. 7.

 



헨리는 엘리의 뒤를 따라 걷는 것을 좋아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그 사랑스러운 붉은 머리가 흩날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자신의 옆이 싫기라도 한 거냐는, 장난스럽지만 퉁명스럽게 불평하는 그녀의 말에도 그는 오직 그럴 리가 없다며 웃어넘겼을 뿐이었다.
정말로 헨리가 엘리의 옆을 싫어할 리는 없었다.
다만 그녀의 뒷모습은, 그녀가 더 월에서 그를 구해주던 순간의, 오토바이를 타곤 머리카락을 붉게 휘날리던 그 순간의 기억이 새록 떠오르게 만들었으므로. 그래서 헨리는 그 이유만으로 엘리의 옆보단 뒤를 택한 것이었다.

언젠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예전에, 단지 할 일이 없단 이유로 창고에서 녹슬어가는 탱크를 몰아본 날이 있었다.
해가 지는 중에 나간 늦은 나들이는 그들이 두 번째로 같이 행동했던 그때의 순간과 많이 닮아있었다.
엘리는 여전히 그 옛날처럼 탱크의 발사대에 앉아 바람을 맞이하며 작게 웃어댔다.
탱크 조종에 집중하던 헨리는 그녀의 웃음소리를 듣고선 고개를 들었다. 주황색의 빛살이 너무나도 눈이 부셨지만 그래도 그는 그녀를 보았다.
겨우 두 눈에 담은 풍경 속 불그스름한 노을은 그녀의 살랑이는 새빨간 머리를 이기지 못해 아스러져만 갔다.
그는 그렇게 한참 동안을 그녀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바라보아 눈이 따가워 눈가가 붉어질 때 즈음엔, 그는 오래 전의 모습이 떠올라 그리운 마음에 무심코 말했다.
붉은 머리의 무법자.
네겐 붉은 머리의 무법자라는 별명이 어울린다고.
그 말을 들은 엘리는 또다시 웃었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게 웃어댔다. 그렇게 직관적인 별명은 멋이 없다며 투덜거렸지만 너무나도 어여쁘게 미소 지었다.
맑게 들려온 웃음소리가 저무는 햇빛 속에서 금방 부서져 자잘해졌다.
분명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너무 오랜 시간을 입안에서만 맴돌았던 말이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 순간만이라도 잊지 않기 위해 같이 웃어 보였다.

그 날 저녁, 엘리와 함께 소파에 나란히 앉아 티비를 보던 헨리는 가볍게 툭, 자신의 고개를 그녀의 어깨에 기대곤 스륵 눈을 감았다. 지나치게 아름다운 하루 뒤엔 항상 피곤함이 물 밀듯 몰려왔다.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든 헨리는 꿈을 꾸었다. 이제는 아득해진 먼 옛날의 꿈을.
그 옛날, 헨리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버려져 엉망이 된 정원이 존재했다. 겨울이면 만개하는 꽃나무가 가득 찬 이상한 정원.
그 나무의 붉은 꽃은 새하얀 눈에 뒤덮여도 홀로 고개를 들었기에, 언제나 그 시절 소년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소년은 항상 팬스에 매달려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버려진 정원이니 주인이 존재하는 것도 아닌데, 소년은 무언가 기다리기라도 하듯 꿈쩍도 하지 않고 조용히 꽃을 지켜보았다.
겨우내 홀로 고고히, 어리석게도 피어있던 그것은 봄이 오면 무엇이 그리도 급한지 꽃째로 숨을 거두었다. 봄이 오고 따뜻한 햇살이 비추면 슬그머니 일어서던 여타 꽃들과는 달랐다. 그것은 마치 계절에 반反하기라도 하듯, 무례하리만큼 험한 생을 택하였다.
그리고 겨울의 마지막 날. 봄은 다가오고 붉은 꽃들은 저물어 정원에는 앙상한 나뭇가지밖에 남지 않았을 때. 드디어 팬스를 넘어선 소년은, 마지막으로 남은 하나의 꽃을 따 깊게 향을 들이마셨다.
하지만 코 끝에 남는 것은 없었다. 그것은 공기 중에 퍼져 자신이 살아있었다 이야기 해줄 향조차 남기지 않았다.
소년은 그 꽃을 아둔하다 여겼다. 가여울 만큼 멍청한 이 것을 놓으면 잿가루로 변해 사라질 것만 같아, 잡은 손을 펼칠 수가 없었다.
소년의 망설임에도 해는 점점 기울었고 겨울의 마지막 짧은 노을은 정원 곳곳을 비추었다. 이윽고 소년의 손에 들린 붉은 꽃에도 아름다운 노을 빛이 닿자 그는 그제서야 꽃을 내려놓았다.
소년은 생각했다. 이 붉은 꽃은 결코 주황빛 만연한 빛살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네가 어울리지도 않는 겨울에 피어났기 때문에 이기지도 못할 일몰을 빨리도 맞이하는 거라고.
그래서 소년은 추운 날씨에 코를 훌쩍이며 붉은 꽃이 다른 색으로 물드는 모습을 기다렸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꽃은, 바닥에 쌓인 눈밭 속에서 추운지도 모르고 여전히 붉어댔다. 언제나 붉어왔던 그것은 임종을 앞두고도 붉은 빛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게나 선명하던 노을은 오히려 새빨간 꽃잎에 부딪혀 잔가루로 천천히 바스러졌다.
멀뚱히 그 풍경을 바라보던 소년은, 조심스레 눈밭에 두 무릎을 파묻고 이내 다시 꽃을 퍼 올렸다. 그리곤 웃었다. 아주 천진난만하게도. 아마도 시린 날씨 때문에 귓가와 콧잔등이 붉게 물들었지만 그래도 그는 웃으며 말했다.
너의 무법자와 같은 어리석음이 결국 이겼구나.
아무래도 나는 네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길을 찾지 못하여 못내 사랑하겠다.

잠에서 깨어난 헨리는 자신의 머리를 받친 채 잠이 든 엘리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새근새근 들려오는 숨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몸을 일으켜 세우고 앞머리를 거두어 이마에 입을 맞추자, 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엘리가 눈을 떴다.
걸쇠를 잠그지 못한 창문 사이로 겨울날에 차가운 바람이 밀려들어 왔다.
그 바람에 또 다시 그녀의 머리카락이 산들, 흔들리자 헨리는 엘리의 손을 잡곤 짧은 산책을 하고 오자며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헨리는 걸었다.
그녀의 뒤에서 조용히 발을 맞춰가며.
흔들리는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만을 바라보다가 닿지 못할 곳에서 손을 뻗기도 하면서.
그리고 우연히라도 그 손 끝에 붉은 빛이 닿을 때면, 그는 천천히 아쉬운 마음을 담아 마음속으로 문장을 써 내려 갔다.

엘리 로즈.
고작 장미 하나로는 너를 전부 담을 수 없지 않은가.
너는 항상 겨울과 같았다.
휘몰아치는 눈보라나 견딜 수 없는 추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너는 추운 나날 속에서도 피어나는 한 떨기 동백꽃의 겨울이었다.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무법자와 같은 붉은 색의 꽃.
그래서 나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네게 붉은 머리의 무법자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제목은 CA 엔딩의 브금 이름 마즘...👉👈 쓰다보니 정작 그 브금과는 안어울리는 잔잔한 내용이 되어버렸지만...

Red Headed Outlaw는
https://www.newgrounds.com/audio/listen/955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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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 엔딩곡의 제목인 Red Headed Outlaw(붉은 머리의 무법자)는 헨리가 엘리에게 붙여준 이명일 것 같다'는 생각에서 출발하게 된 글이었습니다. 오토바이를 거의 날라가듯 모는 엘리의 뒤에 앉은 채 붉은 머리를 보며 떠올린 이명이 아닐까... 하는....

다만 다른 누구도 아닌 ''''그'''' 헨리가 누군가에게 무법자라는 단어를 쓰는건 정말;; 그런 기만도 기만이 없을 것 같아 다른 의미로 무법자라는 말을 사용한거면 좋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생각해본게 겨울에 피는 꽃인 동백꽃이었는데, 엘리를 동백에 비유해먹을게 은근 많더라구요. 엘리는 장미꽃출신인데... 이게 중요한건 아니구 쨋든 그래서 쓰게 되었답니다

헨리가 더 월에서 탈출하며 엘리에게 속으로 '붉은 머리의 무법자'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한동안 잊고 살다가 문뜩 '역시 너는 붉은 머리의 무법자야.'라는 생각이 들어서➡️자기가 왜 갑자기 엘리에게 자꾸 그런 이름을 붙이는건까 생각해봤더니➡️어릴 적 보았던 그토록 사랑했던 붉은 동백과 닮은 점이 많았기 때문에➡️라는 걸 깨닫고 엘리의 붉은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순간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이후론 엘리의 뒤만을 고집하게 되었다 는 글입니다

부제목에 나와있듯 연인 관계를 상정하고 쓴게 맞긴 한데 사실상 글 자체는 헨리가 서술하는 엘리 이야기 내지는 헨리 이야기 근데 이제 엘리를 곁들인..에 가까워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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