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
감성이와 이성이처럼 남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행위는 스토킹입니다 그치만 여기선 그냥 오타쿠적 시추에이션으로 봐주시기...*^^*
※웹툰 기준으로 진행됨
※신한사랑 있음
"감성아, 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이성아, 말이 안 되더라도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야. 왜 이렇게 꼬치꼬치 따지는 거지?"
한밤 중 달빛을 받은 채 애처로이 서있던 이성세포는 진심을 담아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방금까진 침대에 누워 얌전히 잠을 청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모든 건 지금 자신의 옆에 선 이 제멋대로 세포, 감성세포 때문이었다. 이층침대의 아래층에서 얌전히 자고 있는 줄 알았던 감성세포는 정말 갑작스럽고 두서없이 그를 잡아당겼다. 여린 이성세포는 그가 끌어내리니 끌려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감성세포의 애타는 청원에 마음이 동했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 단어 그대로, 물리적으로 끌려내려왔다. 만약 이성세포가 계속 버티고 있었더라면 위층에서 굴러 떨어질 때까지 잡아당겼을 것이다.
그리고 기어코 세포를 끌고 밖으로 향한 감성세포는, 그를 끌어낼 때만큼이나 뜬금없이 말했다.
사랑이와 신의 한 수가 썸을 타는 것 같다고.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사랑세포와 신의 한 수는 사이가 좋았던 날보단 의견 차이로 언쟁을 한 날이 곱절은 더 많았다. 그러니 만약 둘이 타는 것을 썸이라고 할 수 있다면 감성세포와 자신이 타는 것은 지옥행 특급열차 썸이라도 봐도 무방할 터였다. 물론 이성세포와 감성세포가 그딴 걸 탈 일은 유미가 죽었다 깨어나도 없으니 그만큼이나 가능성 없다는 말이었다. 이성세포는 문뜩 괘씸한 마음이 들어 감성세포를 흘겨보았다.
감성세포는 여전히 이성세포는 신경 쓰지도 않으며 어딘가 두리번거렸다. 이럴 거면 왜 데려온 거지, 싶은 마음이 든 순간, 감성세포가 급하게 벽 뒤에 숨으며 자세를 낮추었다. 이성세포는 엉겁결에 그를 따라 몸을 숨겼다.
"또 뭔데?"
이성세포가 지긋지긋하다는 듯 묻자 감성세포는 그를 향해 몸을 바짝 붙이고 작게 속삭였다. 그 덕에 놀란 이성세포가 감성세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지만 딱히 개의치 않는 듯했다.
"바보야! 저기 잘 봐봐."
이성세포는 그가 가르키는 손가락의 방향을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시선 끝에는 맷돌에 기댄 채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사랑 세포가 보였다. 늘 세포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사랑세포였던 터라 홀로 남은 뒷모습이 어쩐지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별로 특별할 일은 아니었다.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걸 수도 있고, 갑작스러운 달밤의 산책 정도야 뭐, 할 수도 있지 않은가.
이성세포는 감성세포가 붙어있던 상체를 슬그머니 뒤로 빼내며 으레 말하던 어조로 중얼거렸다.
"내가 도대체 여길 왜 온건지⋯⋯. 좀 어색하긴 해 보이긴 해도, 그냥 사랑이잖아."
감성세포는 화들짝 놀라 한 손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은 채 다른 한 손은 검지 손가락만 펴 자신의 입 앞으로 가져갔다. 그리곤 쉿, 하는 소리를 내며 불평을 쏟아냈다.
"하여튼 왜 이렇게 눈치가 없어? 기다려봐."
이성세포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감성세포를 바라보던 그때였다. 누군가 차분한 발걸음으로 사랑세포의 곁으로 향하는가 싶더니 그의 옆에 자리를 잡고 섰다. 사랑세포는 놀라지 않고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 계속해서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순간 보름달에 구름이 드리웠다. 유일한 빛무리가 사라지자 두 사람 모두 윤곽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이 마을의 세포라면 누구나 저 특이한 윤곽을 보고 정체를 유추할 수 있었다. 공깃돌 같은 모자와 톡 튀어나온 코⋯⋯. 그는 바로 유미의 또 다른 프라임세포이자 스캔들의 주인공, 신의 한 수였다.
"지, 진짜 신의 한 수 잖아?"
이성세포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속삭이자 감성세포가 그의 정수리를 콩 때리며 낮게 윽박질렀다.
"그럼 진짜지! 내가 거짓말이라도 하는 줄 알았냐?"
"아니, 아니지. 둘이 밤에 따로 만났다는 것 만으론 썸이라고 할 순 없잖아? 그렇게 따지면 지금 너랑 나는? 이 야밤에 이렇게 붙어있는데?"
"제발 징그러운 소리 좀 하지 마! 우리랑 쟤네가 같니?"
감성세포가 그의 머리를 한대 더 쥐어박았다. 이번엔 좀 더 감정이 실려있었다. 이성세포는 맞은 부위를 문지르며 꿍얼거렸다.
"징그러울 것 까지야."
"됐고, 쟤네 말하는걸 좀 들어봐라 우리가 썸이라는 헛소리가 나오나!"
말하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한번 더 투덜거리려던 이성세포는 꽉 쥔 감성세포의 주먹을 발견하곤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썸의 대화란 걸 이해하지 못하는 천성 이성세포는 그렇게 대충 귀 기울이는 척을 했다.
"⋯그래서 내일 데이트에선 패션세포에게 카디건을 입히라 할까 싶은데."
"카디건도 나쁘진 않지만 코트는 어때?"
"날씨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사랑의 배리어가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집안일 세포가 빨래를 대충 하는 바람에 내일 입을 바지에 얼룩이 남았더라고. 코트는 그걸 가리기에 좋을 것 같아서."
"하여튼⋯. 그럼 패션세포한테 그것까지 고려해서 선택하라고 할게."
감성세포가 하도 오버를 했으니 꿀이 잔뜩 발라져 있을 거라 예상했건만.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대화가 오고 갔다. 대화의 내용만 두고 보면 마을의 프라임세포들끼리 따로 가지는 회의라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두 세포의 차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서는 알 수 없는 묘한 분위기가 풍겼다.
오가는 대화 속에서 이성세포까지 눈치챌 정도로 요상한 기류가 형성될 무렵, 잠깐의 정적 끝에 사랑세포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넌 오늘도 나왔네."
툭 내뱉는 듯한 말에 신의 한 수는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네가 어제도 나왔으니 오늘도 나와있지 않을까 싶어서."
"매일 밤마다 만날 필요는 없잖아?"
"넌 낮이든 밤이든 항상 다른 세포들에게 둘러싸여 있거나 웅이와의 데이트 때문에 바쁘지. 그러니 자장자장세포마저 잠든 지금이 아니면 단둘이 말할 기회가 없잖아."
그 말에 사랑세포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싶더니 뜸을 들이곤 물었다.
"내가 안 나와 있었다면? 그랬으면 어떡하려고."
"그럼 내가 널 기다리고 있는 거니 그건 그거대로 좋겠네. 네가 언제쯤 나올지 기대하며 즐거워할 수 있는 거니까."
나올 것이 확실하다는 듯한 태도에 결국 사랑세포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눈물까지 찔끔 흘리며 잘게 웃어대던 그 세포는, 숨을 한번 몰아쉰 뒤 드디어 신의 한 수와 눈을 맞췄다.
"넌 본심세포이던 시절부터 그랬지⋯. 어떤 일이든 항상 당당하고 네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어. 역시 난 그래서 네가 좋아."
그리곤 또다시 웃었다. 이번엔 아주 해사하게. 초승달처럼 접힌 눈은 여전히 신의 한 수를 담고 있었다.
신의 한 수 역시 그를 마주 보며 웃었다. 코만큼이나 빨갛게 상기된 볼이 맑게 갠 달빛을 받아 선명하게 비추어졌다.
"쟤네 안 사귀는 거 맞아?"
조용히 지켜보던 이성세포가 불쑥 말을 꺼냈다. 푹 빠진 채 감상 중이던 감성세포는 그를 흘겨보는 듯 싶더니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내 말이 그 말이야. 역할이 역할이라 그런지 서로 저런 멘트들을 날려대는데 이상하게 사귀진 않는다고. 쟤넨 저런 말이 그냥 숨 쉬듯 자연스러워서 딱히 의미가 없는 거야. 아마 사랑이의 저 '좋아'라는 말도 사랑에 빠진 세포로서가 아니라 단순히 세포 대 세포로서 좋다는 의미였을 걸? 진짜 답답하다, 답답해."
감성세포가 혀를 끌끌 찼다.
이성세포는 그 모습이 꿈 상영관에서 막장 꿈을 관람하던 때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감성세포는 막장 꿈을 보다 답답해질 때면 거침없이 뛰쳐나가 스크린을 엎어버리곤 했다. 놀라 깨어난 유미를 진정시키는 뒤처리는 이성세포의 몫이었다. 그리고 이대로 내버려 두면 이번에도 뒤처리는 이성세포가 할 것이 뻔했다. 결국 이성세포는 그가 더 몰입하기 전에 재빠르게 말했다.
"어쩌면 우리 몰래 비밀연애 중인 걸 수도 있잖아? 설령 아니라고 하더라도 쟤네가 안 사귀는 거면 안 사귀는 거지 굳이 한밤중에 이걸 보러 오는 이유가 뭐야?"
"저 꼴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쟤네를 보고도 무언가 느껴지거나 끓어오르는 게 없어? 아, 저런 선남선녀, 아니 선세선포들이 누가 봐도 썸인데 진도를 못 나가는 게 안타깝구나! 같은 거 말이야. 하여튼 이성세포들이란. 감성이 너무 메말랐다니깐? 역시 내가 나서지 않으면⋯"
이성세포는 문뜩 불길한 느낌이 들어 감성세포의 장황한 연설을 끊었다.
"잠깐, 그래서 본론이 뭔데?"
"우리가 쟤네 이어 주자."
감성세포가 씨익 웃으며 그의 양팔을 붙잡았다. 표정이 참으로 악동 같아 이게 30살 넘게 먹은 세포가 맞는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내진 못했다. 대신 이성세포의 입에선 자그마한 탄식과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뭐?"
"우리가 쟤네 이어주자고! 이름하여 '감성이가 이어드립니다!'"
이성세포가 최대한 작게 소리를 지르며 버럭 화를 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우리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다고! 그리고 우리라며? 왜 '감성이가 이어드립니다'인데?"
"얘 좀 봐, 책 제목이 '해리포터'인건 봤어도 '해리포터와 헤르미온느와 론'인건 본 적 있어? 원래 주인공이 중요한 법이야."
당연히 본인이 주인공이라고 여기는 감성세포의 태도에 이성세포는 헛웃음이 나왔다.
감성세포가 이렇게 떼를 쓰기 시작한 이상 그를 얌전히 말릴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이성세포에게 남은 선택지는 저 의미 모를 계획에 동참하는 척 실시간으로 수습을 하거나, 감성세포의 뒤통수를 후려쳐 나흘 정도 기절시키는 것 밖에 없었다. 어느 쪽이든 쓸데없고 손해밖에 없는 계획이었다.
한참을 얼이 빠진 채 서있던 이성세포는 문뜩 자신의 처지가 불쌍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성세포는 감성세포의 손을 억지로 떼어내며 째려봤다.
"넌 항상 그래. 잘 자고 있는 세포 깨워서 별 이상한 일에 휘말리게 하고! 진짜 성가셔 죽겠네!"
그러자 감성세포는 꿍꿍이 가득한 미소를 짓더니 능청스레 말했다.
"싫다곤 안 하는 거 보니까 도와주겠다는 거지?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이성이 넌 맨날 뭐라곤 해도 어지간하면 다 들어주니까."
그리곤 또다시 웃었다. 이번엔 아주 해사하게. 기분이 좋은지 살짝 붉어진 볼과 초승달처럼 접힌 눈이 꽤 귀여웠다.
그 모습을 본 이성세포의 얼굴에도 붉은빛이 올라왔지만, 벽이 달빛을 막아주어 감성세포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늘 이랬다. 쟤들은 로맨스, 우리는 코미디.
이성세포는 감성세포를 좋아한다.
항상 자신을 못살게 굴어 짜증 나는 극상성의 세포를, 이성세포는 꽤 오랫동안 좋아해 왔다.
전혀 논리적이지 못하고 이유도 알 수 없는 마음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언젠가의 사랑세포의 말에 따르면, 사랑은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아무리 이성적인 이성세포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결국, 좋아하는 세포를 기절시키는 일까진 하고 싶지 않았던 이성세포는, 감성세포의 우당탕탕 계획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
2는 언제 나올지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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